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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새 지도자의 탄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579
내용
엊그제 우리는 앞으로 5년 간 대한민국을 위하여 헌신할 21세기 첫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승리한 정당은 환희요, 낙선한 정당은 침통과 허탈에 잠기었다. 새 대통령이 국민 개인으로서는 자신이 원하는 후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성숙한 민주주의 국민으로서 우리는 그 결과에 승복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가 어느 때 보다도 급변하며 혼란된 이 사회를 잘 영도해 줄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지난 몇 달간 선거를 치르느라 사회분위기는 격앙되고 감정적이었다. 때마침 년말이어서 잔치가 끝난 뒷마당은 더욱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느낀 특이 소감은 유권자들이 의사표현을 매우 조심스러워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바로 오늘의 우리사회를 대변해 주는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지성인들조차도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속내를 잘 보이지 않았다. 테러와 왕따를 두려워하는 극단적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수일 전에 나의 오랜 고객인 아주머니가 말해주는 사랑의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아들이 5년 간 교제해 온 아가씨가 있었다. 둘은 결혼을 언약하였으나 여자의 어머니는 절대로 동의하지 아니 하였다. 이유는 종교적으로 다른 종파라는 것이었다. 둘은 하는 수 없이 헤어지기로 하였다. 총각은 마지막 여행을 제안하였고 처녀는 응하였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처녀는 임신을 하였고 이 사실을 안 총각의 어머니는 처녀의 어머니에게 결혼 허락을 요구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거부당하자 처녀는 고민하면서 고통을 약과 술로 다스렸고, 사연을 들은 총각의 어머니는 기형아출산을 염려한 나머지 낙태를 방관하였다. 사랑의 씨앗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였다.

21세기가 시작된 어느 날, 한국의 로미오와 쥬리엣은 종교적 이유로 맺어지지 못하였다. 총각의 어머니는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울면서 탄식하였다. 바로 같은 날 석간신문에는 미군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미순이, 효순이를 추모하는 애도의 행사가 거행되었고, 여기에는 가톨릭 수녀, 원불교 정녀, 비구니들이 종파를 초월하여 동참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 역사 이래로 어떤 이의 죽음을 놓고 모든 종파의 수도자들이 함께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있었던가. 살해당한 태아의 운명이 한 엄마의 편파적인 잘못된 아집으로 생겨난 사건이며, 같은 시간에 모든 종파들의 사랑이 한 데 모아져서 또 다른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오늘이다.

십여 전 만성정신질환으로 입원하고 있던 환자 한 분이 그린 그림을 기억한다. 그는 하얀 백지에 하트를 크게 그렸다. 하트의 내부 한 쪽에는 불교의 상징인 만자를 그렸고 반대편에는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는 종교는 모두 하나이고 그 목표는 사랑이라고 답하였다. 나는 그의 지혜에 감동 받았다. 나의 평소 생각과 같았고 그렇게 표현한 감각에 감탄하였다. 편파적인 종교심으로 인하여 사랑의 열매를 짓밟고도 자신이 진실한 신자로 생각하고 있을 그 엄마가 가련하다.

수일 후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다. 한 사람의 탄생이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예수의 탄생은 서양세계를 변혁시켰다. 로마제국을 지배하고 그 힘을 만방에 펼쳐서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고난스런 인생역정을 살았다. 예수가 그러했고 예레미야가 그러했다. 영웅의 개인적 삶은 불행하다. 그러나 그 덕분에 백성들은 안정과 행복을 갖게 된다. 진정한 영웅이고져 한다면 개인적 삶을 희생하여서라도 국민을 구원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

대통령의 개인적 삶도 국민의 삶도 함께 좋아지는 미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02.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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