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ENU

김종길칼럼

제목

제자는 스승의 선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516
내용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아무리 불러도 좋은 곡조와 가사이다. 인류의 역사가 다하는 날까지 이 노래의 의미와 뜻은 계속되리라.

엊그제가 스승의 날이었다. 이 날 아침, 출근길에 중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다.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마다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오늘 스승들의 교탁위에는 꽃이 더미로 쌓이겠구나 싶어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옛날 나의 그 시절에는 선생님에게 사드릴 꽃값이 없었고 그런 생각조차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너무나 가난한 시절이었다. 풍요한 시절의 학생들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질투가 났는지, 저 많은 꽃들의 운명은 어찌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한 송이의 카네이션보다 한 더미의 저 꽃들이 어떤 운명을 당하게 될까? 수북이 쌓여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시들어 간다면 하는 쓸 데 없는 걱정을 말이다.

옛말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 “오백년마다 물에 떠오르는 거북이가 물위에 떠올랐을 때 물위에서 쉬일 통나무를 만나는 일” 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그 너른 바다 가운데서 웬 통나무하며 그 부상의 순간에 거기 나무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그만큼 좋은 스승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요즘 학생들이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어른들이 한탄을 하고 있는 데 왜 아주 먼 그런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풀이하면 인간의 속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어른들의 세계는 옛 향수를 즐기는 고향병에 걸리는 존재들이니, 계속해서 사랑은 베풀지 아니하고 옛사랑의 은공을 바란다면 아니될 일이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학생이 전체의 절반도 안된다고 하는 탄식은 거꾸로 보면 아이들이 영악스럽도록 똑똑해졌다는 뜻도 된다. 일찍 똑똑해지는 것은 현실감이 더 생겼다는 뜻도 된다. 교육적으로 나쁜 현상만은 아닐 일이다. 구태의연한 국회의원들이 세상변화를 못 읽고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모습은 당연한 일이다. 선생님이라는 직업도 구태의연하면 아니 될 것임에도 이 세상 변화에 제일 둔한 것이 교육계였다. 21세기 코앞에까지도 수십 년 전의 책상걸상을 쓰고 있지 않았던가. 아이들의 성장을 고려하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의자와 책상을 말한다면 너무 앞서는 욕심일까. 일찍이 깨우치고 변화하였더라면 열린 교육도 제 모습대로 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 고 하였다. 제자들을 걱정하는 나머지 까맣게 타버린 숙변을 강아지인들 달가울 리가 없다. 그만큼 스승노릇 제대로 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겠는데, 좋은 제자가 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인생살이의 본질이 그런 것인 데, 영악스럽게 똑똑한 아이들 탓을 할 일이 아니라 어른들이 보여준 거울은 어떠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전부터 들은 말이 있다. “미국에 가면 학교식당에 줄을 서는데 교수도 학생도 똑같이 줄을 선다더라.” 어려서 듣기에는 무척 신기하게 들렸다. 어찌 스승을 대접하지 아니하고 그럴 수가 있는 일일까. 일면은 참 미국사람들은 예절도 없는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도 하였다. 지금쯤은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 식당들도 그렇게 변화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데, 실상이 어떤지 궁금하다.

중학교 시절에 배운 영어에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이 말은 명언으로 새롭다. 가르치는 일은 스승의 몫이고 배우는 일은 제자의 몫인데, 가르치는 일이 곧 배우는 일이라는 역명제 속에는 상호주의라는 뜻이 숨어 있다. 내 경우는 나이가 들면서 옛 제자였던 사람에게서 신학문을 배우고 있다. 마치 스승은 큰 뱀이고 제자는 어린 뱀이어서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을 그리면 스승과 제자는 하나의 원이 된다. 순환의 원리가 된다. 부처의 가르침의 원리가 되고 세상의 원리가 된다.

현직의 어떤 선생님이 들려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밭의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 고. 발소리는 관심이요 사랑을 뜻함이다.

현실의 학교모습은 만만하지 않다. 수업시간에 거의가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들과 정상적인 수업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곡된 이 모습은 누가 만든 작품인가. 수북이 쌓인 꽃들은 “스승들에게 올바른 사랑을 달라” 는 요구의 상징일 수도 있다. 애들이 영악스러워 지는 현상은 어머니들의 경쟁심과 배금주의, 두 패로 갈라진 어지러운 교육계가 원인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잘못 길들여지고 있다. 이것에서 배워야 한다. 자책하고 반성하는 자세여야 한다.

세상의 이중적 모순이 학교현실에서 극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해결책은 투명해야 하리라. 선의의 경쟁을 장려하되 신사적 태도로 살아가는 인성교육을 배양하는 교육의 원리가 살아야 한다. “師師弟弟” - 스승이 스승답고 제자가 제자다워지는 그 날이 형식이 아닌 진정한 스승의 날이다.(MBC 아침방송 030517)

0
0

권한이 없습니다.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