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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당당한 바보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047
내용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뭘 취재할 거냐고 물었더니 이 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질문 요지를 보니 생소한 ‘오치(五癡)’라는 단어가 보였다. 오치라?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오치’는 없고, ‘길치’라는 자료가 쏟아졌다. ‘오치’ 란 단어는 최근에 신문에서 언급한 모양이다. 다섯 가지 바보란 얘기다. 즉 길치(방향치), 음치, 몸치, 기계치, 운동치를 뜻하고 있다.

나의 진료실로 티비 방송국 스텝들이 장비를 둘러메고 와서는 한 시간이나 걸려서 녹화를 끝냈다. 주로 길치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물어와 성의껏 대답했더니 심야의 문화프로에 방영되었다. 주인공들은 길을 찾아 헤매는 길치, 댄스를 배우는 데 성공한 몸치, 뮤지컬 가수가 된 음치 아가씨들의 모습이 소개되었다. 이 시대 바보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더 당당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들이었다.

치란 ‘어떤 사물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어리석음’ 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나는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그걸 일러 더듬치라 한단다. 한 번은 친정에 다니러 온 딸과 함께 출근을 하는데, 늘 다니는 지하철을 평소 타는 칸과 위치가 다르게 타게 되었다. 서면역에 하차하여 원하는 방향을 찾는데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딸이 엄마에게 이르기를, “아빠는 꼭 자가용으로 출근하시도록 해라” 고 당부를 하더란다. 그러니 나는 방향치라는 진단을 추가로 받은 셈이다.

젊은 날 군의학교 시절에 독도법을 배웠고, 그 덕분에 미국에 가서도 지도 한 장으로 별 어려움 없이 관광을 했는데 지하철에서 잠시 헤맨 덕분에 방향치가 되다니 참으로 억울하다. ‘세상에 지하철에서 한 번쯤 헤매보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길치’ 단어를 검색하면 참으로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중년 여성은 정말로 심각한 길치이다. 그녀의 소상한 과거를 잘 알고 있으니, 길치의 가장 심각한 사례를 아는 셈이다. 그녀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가끔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간다. 그 까닭은 운전 중에 어떤 무의식적 생각이 그녀의 과거 상처와 연관되어지면, 그 이후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서 운전을 하게 된다. 잠시 해리(解離)현상에 빠지는 것이다. 헤매다보면 정신이 들어서 남편에게 전화로 안내를 받고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아는 길 외에는 절대 운전을 기피한다. 어린 날의 정신적 외상이 남긴 무서운 후유증이다. 길치라는 현상 속에는 집중력이 산만하여 기억력이 나빠진 경우로부터 심한 정신병리에서 비록되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내게는 더듬치, 방향치 뿐만이 아니라 기계치라는 진단명도 있다. 이미 수년 전에 아내가 붙여준 진단이다. 얼마 전에 한밤중 도심에서 타이어 펑크를 당했다. 휴대폰을 두들기니 십 분 내로 정비공이 달려와 주었다. 예전같이 손에 기름칠을 하며 생고생할 일도 없었다. 세상 살기가 너무도 편해졌다. 이제 기계치에 대한 걱정은 덜게 될 모양이다. 방향치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로 길을 찾아가면서도 휴대폰으로 문의하면, 위성중계로 낱낱이 안내해주니 참 편리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고사가 있다. 옛날 중국에 어떤 사람이 강물 한가운데서 칼을 물에 빠뜨리고는 즉시 뱃전에 표를 해두고, 배를 내린 후에 그 표식을 찾아서 칼을 찾고자 했다는 우화이다. 위성시대가 되니 그런 비유조차 우스개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기계치라고 생각한 주인공에 대해서 쓴 글이 있었다. 그것을 옆집 어린이가 해답을 주었다고 술회하였다. 아이는 그의 잔디기계를 쉽게 고쳐주면서, “아저씨는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 난 이게 재미가 있거든요.” 하더란다. 요즘 초등학교에 가면 분실물센터에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다. 우리의 아이들은 각주구검의 바보만도 못해졌다. 찾으려고도 않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새 것을 마련해줄 터이니까 애써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길치가 늘어나는 건 현대문명의 한 단면일 것이다. 풍요가 준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들은 그렇게 만들었을까. 부모가 해 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없앤다.


우리의 두뇌는 쓰면 쓸수록 신경세포끼리의 연결인 신경섬유망(네트워크)의 발달이 왕성해진다. 인체의 감각은 뇌의 기저부분에서 정보를 접수하고 뒤쪽 머리로 연결된다. 여기서 정리된 정보는 뇌의 앞쪽으로 전달된 후에 이 곳에서 결정 사항이 논의된다. 전두엽의 명령은 머리꼭지에 있는 운동중추부위에 하달되어서 아래로 전달된다. 의존심을 키우면 네트워크는 성글어지게 된다. 성글은 네트워크는 성능이 나쁜 두뇌다. 어려서부터 섬유망이 촘촘하게 되도록 훈련해야 된다. 물론 좌뇌의 분석과 우뇌의 통합 시스템에 선천적 차이는 있을망정 상당 정도가 훈련으로 해결될 일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헤매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내 자신만이 아는 신어를 만들어 보았다. ‘왼왼똑오’. 하차하여 ‘왼쪽, 왼쪽, 똑바로, 오른 쪽으로’ 가면 직장으로 가는 길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는 모두가 멍청이가 되기 십상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라도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보 대량생산의 시대에 산다. 너나없이 조금만 궤도를 이탈해도 바보가 되는 지상천국에 살고 있다.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환자 중의 어떤 학생처럼 엄마를 위해 대신 살아주는 기분으로 산다면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던 사람이 정신분석을 받고 향상되었다는 경우를 보면 ‘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각오로, 집중적인 관심의 결과' 였다고 고백했다. 바보 현상에 대한 치료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임상사례였다.

정말로 당당한 바보는 치기(癡氣)를 자랑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여 숨어 있는 자기의 재능을 찾는데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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