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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구미호의 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9.0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4364
내용
                                         구미호九尾狐의 한


                                                                                                                                                                                                            김종길


  어느 날 저녁 TV에서 일본의 풍광을 즐기는데 언뜻 한 장면에서 눈이 멎었다. 교토 근처에 있는 후시미이나리 신사, 여우가 벼를 물고 있는 동상銅像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었다. 여우가 벼를 물고 있다니, 신기했다. 뭔가 재미있는 동화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안내자의 설명은 그 지방 사람들이 모시는 농업의 신이 있으니 한국계의 한 전설적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 인물이 여우로 변신을 했다는 것인가?

 

  이나리 지방에 벼농사를 처음으로 전래한 사람은 신라시대 울주군 출신 하타秦일족이라고 소개했다. 아무래도 그 소개 내용에 잘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신사가 있는 교토 근처가 고대에는 백제 세력권이었고 진씨는 북부여 계통이니 백제계가 아닐까 짐작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 인물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으니 백제계 진씨라는 설이다. 어느 쪽이거나 한국계라는 공통점은 있으니 접고 넘어간다. 흥미로운 점은 그를 기리는 교토지역의 사람들이 하필이면 여우라는 동물신으로 형상화시켰냐는 사실이다. 사람이 죽고 나서 동물 캐릭터로 변신하는 예는 동서양의 신화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고대 인문지리서인 <산해경>에는 수십 종의 요괴 그림이 전한다. 그 중에는 여우 형상도 있고 인어도 있다.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여우가 이나리의 여우와 어떤 인연이 있어 보였기에 그 상관관계를 검토해 보려고 한다.

 

  한일 역사를 연구하는 홍윤기는 먼저 ‘이나리’는 지명도 전라도 말, ‘나락’이 변하여 (이)나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락은 바로 논농사를 지칭한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농사의 신을 섬기는 일이 중요한 행사이니 일본에서는 니이나메노마츠리(일명 신죠사이)라 해서 궁중제례가 전해온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일본인의 94%가 한국에서 건너간 이주민이라는 점이다. 이 의견은 김산호가 지은 <대조선제국사>에서 일본학자인 埴原和郞, <原住民과 移住民의 人口比例硏究>의 저서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하니 여우는 바로 고대 동이족의 상서로운 동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게 된다.

 

  단군조선의 제2대 단군이었던 부루(夫婁) 단군 시절, <규원사화 단군기>에 구미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이 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밝고 희고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짐승이 서책(書冊)을 입에 물고 상서(祥瑞)함을 드러내는지라...“

청구는 우리의 고대국가 명칭이다. 부루 단군 시절에 구미호의 출현과 더불어 하우(夏禹)라는 인물이 있다. 당대의 중국인은 미개하여 해마다 홍수로 시달렸다. 우(禹)는 부루 단군의 도움으로 홍수를 다스리고 하(夏)나라를 건국하였으며 천하를 9주(九州)로 나누었다. 하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였다. 구미호란 부루태자를 의미하고, 9주는 구미호의 꼬리 숫자와 일치한다. 곧 구미호의 아홉 개 꼬리는 동이족을 지칭하니 아홉 꼬리는 배달나라의 9부족(黃夷, 白夷, 玄夷, 赤夷, 風夷, 楊離, 于夷, 方夷, 畎夷)이다.  당대에는 만약 어느 한 부족이 이민족과 전쟁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면 온 부족이 힘을 모아서 응징하는 강한 결속력을 보여서 감히 주위에서 도전하지 못하였다. 부루 단군께서 치수법을 가르쳐 태평성세를 도와주었으니 부루, 곧 구미호는 상서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책에 여우는 매우 상서로운 동물이고, 구미호는 입에 책을 물고 나타나는 신령스런 동물이 된다.

 

  <산해경>에 전하는 대목 중에 여우와 관련된 대목을 본다.

  “승황이라는 동물로 백민국에 사는데 여우같으며 등 위에 뿔이 있다. 이걸 타면 2000년     을 살 수 있다”

고 쓰여 있다. 배달나라(환국桓國)는 18대, 1565년을 이어졌으니, 2000년이라는 상징임을 연상할 수 있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동서남북을 구미호, 토끼, 삼족오, 두꺼비로 표현하였으니, 구미호는 해가 뜨는 동향을 지칭하는 상징적 동물이다. 여우는 죽을 때는 그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 근본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간다고 하여 오늘까지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구미호를 찾는 다른 증거를 보자.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조선 사람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이 말은 큰 활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고대 환국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환국은 남쪽 양즈강에서 바이칼호까지 남북 5만 리, 서쪽 몽고에서 동해까지 동서 2만 리의 영역을 가지 대국이었다. 옛 동이의 땅이었던 중국 사천성에서 발굴된 전각화에 구미호와 삼족오가 그려져 있으니 신화가 아니라 실존하는 역사임을 말해 준다.

  현재 한국의 후손들에게 구미호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면 구미호는 너무 서럽다. 일본의 꼬리 하나인 여우는 신으로 추앙받는데, 한국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가진 구미호는 슬픈 전설이 되었다. 전설의 여우는 인간이 되려고 온갖 처절한 노력을 하지만 결국은 인간이 되지 못하고 새벽이슬처럼 끝나고 마는 이야기다. 혹은 사람의 간을 내먹는 사악한 구미호, 공동묘지를 파헤치거나 닭장의 닭을 몰래 먹는다는 식의 재미 위주의 우스개가 고작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구미호의 시도는 항상 실패로 끝난다. 어째서 고대의 강력한 군주를 상징하던 구미호가 한낱 무덤이나 파는 요괴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역사는 승자가 지배한다는 슬픈 현실을 상기해야 한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에서 고대 역사 왜곡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고구려에 침략한 관구검의 난리 때 한국의 고대사 대부분이 중국으로 넘어갔고, 조선국의 고대사는 중국인의 손에 의하여 마음대로 멸실, 왜곡되었다. 중화주의에 입각한 역사왜곡은 물론이고 김부식 같은 국내의 역사가들과 국내 정치를 지배한 대부분의 관료들은 중화사상에 물들어 역사를 잊은 채 중국인의 왜곡된 역사를 받아들여 후손에게 물려줌으로써 통열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공자의 <춘추>를 의례의 근본으로 삼고 군왕을 높이고 신하를 억누르고 민족의 존재를 잊어버렸고 끝내는 자기의 나라까지 배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반도에 임나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일본의 역사 왜곡도 있었다. 한마디로 구미호의 전설은 왜곡, 훼손되어서 후손들은 진실을 모르고 살았다. 

 

  단재선생은 ‘역사는 자아自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고 하였다. 류마치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인체의 면역체계가 자기와 비자기를 구별하지 못하여 자기를 공격하는 병이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고대사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오랜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9,000년 전 동이족의 후손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오늘의 핀란드, 터키, 몽고, 아메리카, 한반도, 일본을 형성하고 인류 최초의 송화강 문명을 일으킨 위대한 민족이라고 전한다. 세계를 정복한 징기스칸이 같은 핏줄이었다니, 한라산 이름이 몽고어라니...고대사를 공부해 본 일이 없는 나는 반도의 남쪽 귀퉁이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환갑이 넘어서야 겨우 동이족(쥬신)의 위대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죽기 전에나마 위대한 조상의 모습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구미호의 원혼은 지하에서 울부짖고 있으리라. 배달의 후손들이여, 구미호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바로 후손들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라는 간곡한 울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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