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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죄와 용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923
내용
올해 유월은 무척 뜨거웠다. 마지막 일요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입맛이 쓰다. 이십일세기 첫 월드컵의 마이너결승전이 간밤에 있었고, 전국민이 열망하던 월드컵 3위가 무위로 끝나는걸 보고 늦잠이 들었었다. 과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16강만 되면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4위까지 올랐는데도 서운함을 느끼다니.

없는 입맛에 밥을 떠 넣고 쇠고기장조림 한 덩어리를 곱씹으니 슬며시 돌아오는 입맛을 느낀다. 남의 살을 씹으면 입맛이 난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남의 살을 먹으며 입맛을 느끼다니, 우리의 본성은 원래 공격성으로 태어난 동물인가 싶어진다. 골을 넣은 선수를 생각하며 씹을꺼나, 실수로 공을 뺏긴 우리 선수를 씹을거나. 사람들이 용서를 잘 못하는 것도 이런 공격본성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밤 마이너결승전이 용서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팀이 경기시작 11초만에 어이없이 선취골을 내어주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영원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월드컵사상 최단시간의 골로 기록된다니, 수치를 기록한 셈이다. 4강에 오르기까지 한 골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 유명한 프랑스팀이 한 골도 얻지 못하고 탈락하지 않았던가.

용서심이 발동되더라도 이미 뇌리에 입력된 황당한 장면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잘 싸웠고 당당한 메달을 받았을망정. 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넣은 선수가 귀국하자 화가 났던 국민 하나가 권총을 쏘아 살해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상식적 사건은 아니나, 인생에는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많이도 일어난다. 쉽게 용서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한 중년부인은 자신의 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평생을 두고 자학한다. 그 죄라는 것이 남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철들기 전 어린아이 때부터 자위행위를 해온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가 한 짓을 왜 용서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녀는 완강히 못한다고 고집한다. 그녀의 가혹한 원죄의식은 용서를 베풀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강간당한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후일에 살인으로 보복하여 옥살이를 하는 인생도 있다. 성숙한 도덕은 현대법과 같이 정상참작을 할 줄 아는 융통성이 있으나, 병든 마음 안에 자리한 원시적 도덕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는다.

나 자신은 용서할 수 없는 죄업을 지은 일은 없었을까. 없을 리가 없다. 스물 몇이면 철이 드는 성인이다. 그 나이에 나는 의과대학 예과 2학년이었으면서도 철이 없었다. 해부학을 배우게 되었다. 실습조가 편성되고 네 사람이 한 조로, 네 조가 시신 한 구를 맡아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해부학 주임교수님은 왕호랑이였다.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을 위한 엄숙한 예식을 가졌다. 엄숙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했다.

유월의 더운 한 낮에 냉동시설도 없는 실습장은 포르마린의 독한 내음으로 숨쉬기도 거북하였다. 긴장이 풀리고 익숙해지던 어느 날, 우리는 실습장의 앞뜰에서 점심식사를 했고,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그때 이미 결혼한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가 시신의 살점 일부를 잘게 쪼개어, 결혼한 친구의 빈 도시락에 넣어 두었다. 포르말린에 절은 살점은 영락없는 장조림으로 보였다. 점심반찬을 나누어 먹다가 남은 장조림 일부가 들어 있는 것처럼. 가여운 새색시가 질겁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우리 모두가 발칙한 공범이 되었다.

다음날 그 친구는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씩씩거렸다. 순진한 아내가 장조림인줄 알고 씹을뻔 했다는 것이다. 아뿔싸, 그의 아내가 인육을 씹을뻔 한 위기를, 눈치껏 넘기었고 차마 진상을 말하지는 못하였단다.

그가 어떻게 우리 악동들의 소행을 용서했는지는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그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느꼈던 죄의식만은 사건으로 뚜렷이 남았다. 우리는 장난으로 그랬다하더라도 그 시신의 주인공이나 후손이 듣게 되었다면, 몸서리칠 일 아닌가. 공소시효(?)는 지난 일이라도 우리는 퇴학이라도 달게 받았어야 했다.

나이가 들고 어머님의 죽음을 맞았다. 시신을 추스르고 화장을 하였을 때, 소각장의 창 너머로 보이던 시신이 마지막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르던 불길, 잠시 후에 덜 타고 남은 뼛가루와 소각대 위에 오롯이 형체만 남은 어머님의 두개골이 보였다. 그것도 잠시, 주검의 청소부는 분쇄를 위하여 쇠집게로 두개골을 내려쳐 바스러뜨렸다. 이것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인생이 뭐 이런거지 하는 느낌, 아니 그런 것조차 배제된, 감정의 추방이라고나 할까. 저렇듯 스러지기 위해서 당신은 그토록 열심히 살아오셨던가. 허허러운 느낌이었다. 우리를 성장시켜준 해부학교실의 시신들, 그 분들도 끝내는 화장으로 정리되었다. 나의 어머니같이 불태워지고 분쇄되어서 어딘가에서 먼지로 날려졌을 것이다.

불태워지는 두개골 안에 그림같은 슈팅장면이 담겨져 있은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먼지로 뿌려질 그림들, 찬연한 붉은 악마의 색채들, 그 함성, 욕망, 아직 용서하지 못한 미움들까지도.

남의 고기를 씹으면서, 살아 있음으로, 입맛이 돌아온다고 즐거워하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생전의 어머니가 늙으니 맛을 모르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나도 이젠 철없던 나를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용서를 받은 사람만이 용서를 한다고 했던가. 어떻게 용서할지를 궁리한다. 시신을 기증하신 분의 일조로 의사가 되었고, 많은 아픈 이들에게 성심껏 의료시혜를 베풀 수 있게 된 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아마도 그 보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세월이 변해도 여전히 철없이 성장하고 있을 히포크라테스 후학들의 해부학 실습대에 나 자신이 누워서, 그들이 예전의 나처럼 장난질하더라도 용서하면서,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을 그런 주검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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