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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젊은 팬더마우스의 죽음

작성자
코스모스
작성일
2006.11.09
첨부파일0
추천수
1
조회수
2220
내용
어쩌다 같은 글이 두번 올라가
삭제도 안되네요. 어쩌지요.
그래도 날이 조금씩 선선해지는가봐요.


어제아침에는 베란다에서 키우던 팬더마우스 한마리의 장례를
아파트 뒷편 화단에다 치루었습니다.

제 아비의 마지막 공격앞에서
갑자기 고개를 위로 젖히고 피에 젖은 얼굴로
저를 애처럽게 올려다보던 초롱초롱 새까만눈동자가
자꾸 생각납니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그를 구명하지않은
저도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며칠전까지도 쌩쌩하게 돌아다니던 새파란 그가
죽어야 했던 유일한 이유는 새 동생이 태어났기때문입니다.
아비는 그동안 그를 미워하거나 하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미보다도 그를 더욱 다독거리며 입맞추곤 했습니다.
그가 심하게 장난을 치거나 버릇없이 굴때도
느린 걸음의 점잖은 아빠는 모른척 내버려 두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날이 자라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새동생있는 집안으로 달려가 어미에게 대들었습니다.
어미는 어쩔줄몰라하며 안절부절하였습니다.
어미는 종족번식의 임무만을 충실히 수행할뿐,
팬더마우스 집안의 질서유지와 악역은 항상 아버지의 몫이었습니다.
아빠와 새끼 수컷이 함께 상자안에 격리된지 하루지난 다음날 아침,
아빠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조금후, 제가 한 일은
그의 무덤을 만들고 흙과 솔잎으로 덮은후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린것뿐입니다.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지난 겨울 처음 새끼 났을 때
아비는 그토록 부지런히 톱밥이랑 휴지따위를 물어나르며
어린것의 잠자리를 마련하고 바람구멍 샐틈없이 집안샅샅
문단속하느라 쫒아다녔습니다.
맨벌거숭이 붉은 몸뚱이가 털을 갖추고 눈도 뜨고 밖으로
아장아장 걸어나와 세상구경할 때에
아빠는 때때로 볼과 입에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가 나날이 장성하면서 조금씩 분쟁이 일어나자
얼른, 갓낫을때 꼬리 잘린 절름발이 형님이 사는 옆집으로
피신시킨 까닭에 둘은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죽은 젊은 수컷은 분가시켜줄 집이 없었습니다.
그냥 죽게 내버려두면서 자연의 무정한 섭리같은 것을 떠올렸습니다.

어제 오후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아빠수컷이 포장박스로 된 임시거주지를 뚫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저녁 때에야 어찌된 일인지 이전에 어미암컷과 살던 집안에서
여전히 다람쥐틀을 구르며 돌아 다니고 있는 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길고 먼 담장들을 어떻게 타넘었을까요.
두형제가 사는 포장박스 옆집은 용케도 건너 뛰고서 말입니다.
기분이 묘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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