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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악처는 어떤 여자인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3
조회수
4897
내용
그리스의 여인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의 부인이고 악처로 유명하다. 대문 앞에서 집을 나서는 무능한 남편에게 물벼락을 선물했다니 보통여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유명해진 게 악처 덕분이라고도 하니 부부사이는 참으로 아리송하다.

흔히 악처라는 말은 있지만 악부(惡夫)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남녀평등의 세상에서 뭔가 불공정하다. 의처증으로 아내를 살해하거나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악부들의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제까지 세상의 주인공이 남자여서 그렇다면, 세상살이가 변모하고 있으니 시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하여 가출한 아내들을 위한 모임에서 이런 문제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생에 찌들은 모습이 역력한, 폭력남편들이었다. 구타당한 아내가 가출하여 사회보호단체에 의탁하여 있는 동안, 그들에게는 법원의 강제명령이 내려져 참여하게 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가장들인 데, '악처이거나 병신같은 마누라' 덕분에 원치 않는 강의를 들어야 하는 팔자가 된 남편들이다.

삼십대부터 육십대의 가장들 이십 여명이 모였다. 왜 폭력을 하느냐는 물음에 공통된 답변이, "남편을 무시하기 때문에..." 라 하였다. 감히 지존의 남편을 무시했다는 말이다. 열 집이면 적어도 한 집에서 심각한 폭력이 발생한다는 통계결과는 현대사회의 부부폭력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가정폭력을 규제하는 법도 선포되었으나 처벌은 미온적이다.

'인형의 집' 에서 노라가 집을 뛰쳐나온 사건이 서양여인들에게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반세기 전 정비석의 소설에서 한 대학교수 부인이 사교댄스를 배우는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지존의 남편 입장에서 보면 바람난 부인은 악처로 가름해야될 사건임에 틀림없다.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위배되면 도매금으로 악처가 되는 게 불문율이었다. 공자 후손이 만들었을 이 규칙은 오랫동안 한반도를 지배해 왔으니까.

며칠 전에는 인기 개그우먼이 남편의 야구방망이에 갈비뼈가 세 대나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입원하고 남편은 형사 구속되었다. 부인에게 숨겨진 남자가 있다고도 하고 남편의 무능한 인생을 보도하는 기사도 있었다. 부부의 숨겨진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악처인지 악부인지는 공정한 수사가 판가름해 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바쁘게 살아가는 남편들이 직장스트레스를 핑계로 딴 여인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동안, 일부 아내들은 애인을 따로 챙기는 생리를 키워가게 된다. 장미의 모텔들이 난립하는 풍속도가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사랑과 신뢰가 옅어 가는 물질의 시대가 만드는 비극이다.

세상에서 악처라고 불리우는 여자도 내용을 듣고 보면 남들도 공감할 사연을 갖고 있다.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는 소크라테스에게 물바가지를 퍼부은 악처에게도 필히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상호간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허지만 폭력남편들의 공통점은 정상이 아닌 치료의 대상이 되는 성격장애같은 정신질환자들이다. 비록 그들의 무의식을 이해하면 폭력 남편들 또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는 하다. 성장과정에서 피해를 당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가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치료가 필요한 이유이다.

가출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분모가 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들의 편협한 열등감이 그것이다. 우열이 아닌 동등한 나눔이 요구되는 부부생활에서 일방적 자기중심은 악이 된다. 폭력남편들은 기본적으로 열등의식과 미숙한 자아감을 감추려, 잘못을 전적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니까 자신만이 항상 옳다는 미숙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자기공명장치를 이용하여 물의 구조를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매우 경이럽다. 사진을 찍기 전에 물에게 사랑한다, 감사한다는 말이나 글을 보여주면 물은 아름다운 육각형의 결정체를 보여주는데 반해, 욕을 하거나 부정적인 글을 보여주면 결정체는 뭉그러뜨려지고 형체가 사라진다.

상상해 보자 - 폭력으로 상처받은 아내가 남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밥을 짓고, 울면서 독기 품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반찬을 조리하여 그 음식을 남편에게 먹인다. - 물이 70%인 그 남편의 몸은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될까. 독기가 배인 음식의 물방울들을 생각해 보자. 한 방울의 물조차 사랑을 공명하지 못하면 결정체를 잃는데, 남편의 삶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상처받은 아내, 악처가 만든 독기 배인 식품들, 이런 것들이 먹이사슬에 연결되어 온 불행은 독기 밴 음식의 족쇄에 연결된다. 악순환은 계속되고 부부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으로 살아간다. 애타적 마음이 부족할 때 미숙한 인생이 된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배척 당하는 이유가 미숙한 자기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나누며 사는 인생살이에서 나눔이 선이라면 자기중심은 악이다. 세상에는 악처도 악부도 없다. 다만 자기욕망과 자기중심적 독선이 있을 뿐이다. 그 해결은 오로지 '미숙'을 치료하는 사랑과 신뢰만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야만적인 가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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