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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타이타닉호의 최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901
내용
영화 '타이타닉'은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여러 장면들이 기억난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면은 주인공 남녀가 뱃머리에서 팔을 벌리고 선 장면이다. 아마도 흔히 기억되지 않을 장면의 하나는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이 단호히 배와 함께 운명을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이 생각나는 이유는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큰 희생을 치르도록 만든 전철 운전기사의 행동이 소상히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하여 위기결정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배가 침몰할 때 여의치 않으면 선장도 함께 순명하는 그런 얘기들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타이타닉호의 선장의 태도가 너무나 당연한 행위로 보였을 터이다. 허지만 전철 기사의 경우를 보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평범한,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수 년 전 버스 운전기사들의 노사분규 때, 정시준법운행을 하겠다고 하여서 시민들은 어리둥절하였다. 평상시에는 준법을 아니 하였다는 증거로 보아야 하는 이상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상식이 상식으로 통용되지 않는 현실의 사회. 정상이 비정상이 된 사회. 우리는 그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이런 결과가 엄청난 재난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비싼 교훈을 얻고야 말았다.

내 삶도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데, 신간 모 월간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년 전에 김포반도 지역에 북괴의 땅굴이 의심되어서 민간인 몇이 굴착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진위를 놓고서 시비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 경기도 수원 옆의 화성 지역에서 땅굴의 의심이 강력히 제기되어 굴착이 계속되고 있다는 취재 기사였다. 나는 6.25 피난생활을 겪은 세대이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즉각 심각한 불안과 파국적 공상을 연상하게 된다.

개구리 온탕효과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에 넣게 되면 개구리는 탈출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며 필사적인 사투를 벌리게 된다. 허지만 미지근한 물에서 점진적으로 온도를 높여가게 되면 개구리는 편안하게 유영을 즐기게 된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죽음의 온도에 이르게 될 때 버둥거려도 이미 때는 늦는다. 비슷한 방법이 의학적 치료에도 응용된다. 탈감작요법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어린이에게 점진적으로 개와 친하게 하는 공포 소거요법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여러 해 앞서 동독은 서독 쪽으로 비밀조직을 통하여서 시민운동가의 이미지 손상작업이라던 지 장차 해로울 인물들을 제거하는 심리전을 장기적으로 벌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통일 후에야 들어 났다. 새로운 대통령 인수위 안에서도 북한이 파견한 공작원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소식에도 사람들이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 반응이 바로 개구리 온탕 작전의 성공적 수행은 아닐까 겁이 나는 것이다.

자유를 만끽하며 성장한 신세대들이 전쟁 없이 통일이 된다면 어느 쪽으로 통일이 되던지 한 민족인 데 어떠냐는 식의 반응이 있다는 소식은 놀랍다. 정체성의 혼돈이 정도를 넘어섰다. 이 사회가 지난 수년동안에 표면적 안정을 구가하고 있는 동안 땅굴은 계속해서 남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바로 개구리 온탕작전과 땅굴 작전이 계속되고 마침내 어느 날 새벽,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땅, 땅굴 도처에서 불쑥 불쑥 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숫자 미상의 적들이 나타난다고 상상해 보자. 휘발유 한 통에 온 지하철이 불난리가 일어나는 데, 수류탄 몇 개만으로도 전국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스런 그런 사태가 안 일어난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세상에는 빨리 죽고 싶어하는 우울증의 인생들이 많다. 어서 어서 세월이 가서 빨리 마감하고 싶다는 체념의 인생들이다. 그들에게 삶의 적극성은 없다.

체제가 어떠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도 그런 체념적 인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소시민의 하나이니 누군가 온탕에 불을 지피는 정보를 안다고 한들 아무런 힘이 없다. 그래서 계미년 3월 1일 국민들은 궐기한다. 지난 번 애도의 촛불행사의 열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소녀적 감상의 물결이 아니다. 평화와 조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적극적 소망의 집결이다.

엊그제 새로운 참여정부가 출범한 마당에, 이런 불안이 일어나는 것은 다만 한 사람 졸부의 신경증적 불안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솥뚜껑만 보아도 놀라는 6.25 전쟁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항구 부산에서 출발하여 대륙횡단 국제열차를 타고 파리여행을 하게 되는 날은 진정 오게 될 것인가. 희망과 걱정이 교차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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